[조선일보 칼럼] 청년 정치, 길거리 캐스팅식 발탁으론 안 된다[2030 플라자]

작성자
이동수
작성일
2022-05-08 16:23
조회
2416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686522?sid=103

정치권에 쓸 만한 청년 없다고? 매번 이벤트성 인재 영입 때문
아이돌도 고강도 훈련 거쳐 나오는데, 깜짝 발탁 쇼로 되겠나


5년 전 바른정당 관계자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새누리당 탈당 의원들이 창당한 바른정당이 청년정치학교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는 내게 “우리 당의 미래는 청년정치학교에 있다”고 했다. 40대 이상은 지지 정당이 확고한 만큼 청년들을 중심으로 지지기반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실제 청년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모집 정원(50명)의 6배가 넘는 신청자가 몰렸다. 비록 당세는 크지 않았지만, 청년정치학교는 세간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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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정치는 멋들어진 명분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바른정당은 소속 의원 상당수가 탈당 후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면서 원내교섭단체 지위마저 무너졌다. 나는 젊은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청년정치학교의 취지를 응원했지만, 내심 그 성공에는 의문을 가졌다. 당 상황에 따라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예측이 엇나갔음을 느낀 건 이번 대선에서였다. 그 시절 청년정치학교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청년들은 국민의힘 대선캠프 곳곳에 포진, 이번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아마 그들이 없었다면 국민의힘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구태 정치를 거듭하다가 처참히 패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바른정당의 실험은 비록 작았지만, 빛났다.

5년 전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된 건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년 공천이 다시 화두에 오르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전 대표는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1월, “6월 지방선거에서 지방의원 30% 이상을 2030 청년들로 공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이라는 전쟁터에서 목숨값을 베팅하듯 던진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단지 기성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 때문이 아니라, 주자로 나설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의원만 하더라도 전체 의석수의 30%를 공천하려면 1000명은 선거에 내보내야 한다. 가뜩이나 청년이 부족해 만 45세도 청년이라고 인정하는 정치권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청년 정치인을 양성하자는 정치권의 다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입버릇처럼 독일 기민당의 청년조직 JU(영 유니온)나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을 들먹이며 인재 양성에 관한 중장기적 계획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런 계획들은 으레 차일피일 미뤄지고, 막상 선거에 직면하면 또다시 정체성과 캐릭터에 기댄 이벤트성 인재 영입이 이루어진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경험과 역량을 쌓아온 청년들은 소외된다. 깜짝 발탁된 이들의 자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혼외자처럼 예상치 못한 변수에 타격을 입기도 하지만 ‘인재 영입 쇼’로 분위기를 쇄신해보려는 정치권의 못된 관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정치권은 늘 쓸만한 청년이 없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시장 논리로 접근해 생각해보자. 정치권에 청년 인재가 적은 건 그만큼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청년들을 체스판의 폰처럼 소모적인 존재로 취급한다는 인식은 다년간 쌓여온 집단적 경험의 산물이다. 미래통합당도 2020년 총선 당시 퓨처메이커(청년 벨트)라는 공천 제도를 발표하고 청년들에게 무슨 큰 권리라도 주는 양 홍보했지만, 실상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험지로 그들을 등 떠미는데 불과했다. 이런 취급을 받자고 생업을 버리고 정치에 도전할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의 실력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데에는 연습생 시스템이 크게 작용했다. 그들은 다년간의 고강도 훈련으로 완성된 가창력과 춤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아이돌 멤버도 이렇게 키워서 내보내는데 우리 삶을 결정짓는 정치인을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해선 안 되는 일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