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칼럼] 민심 떠난 정의당의 파산 [2030 플라자]

작성자
이동수
작성일
2022-07-27 15:39
조회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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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집안싸움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지만, 이번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진짜 참패한 정당은 정의당이다. 총 4132명을 선출한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은 겨우 9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기초 의원 6명, 광역 의원 비례대표 2명, 기초 의원 비례대표 1명이 전부다. 자치단체장은 광역과 기초를 불문하고 전멸.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좀 더 세심히 들여다보면 결과는 더욱 처참하다. 기초 의원 지역구 당선자 6명 중 5명이 3등이다. 만일 이번에 시범적으로 시행한 기초 의원 중대 선거구제가 아니었다면 당선자 수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줄어들었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의당에 사실상 파산선고를 내린 셈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그동안 정의당은 자신들의 부진을 으레 기득권 양당 정치 탓으로 돌려왔다.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는 소선거구제 때문에, 거대 양당이 편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했기 때문에 국민에게 받는 지지만큼의 의석을 얻지 못한다고 말했다. 물론 양당 구도를 공고히 하는 제도 때문에 정의당이 다소 피해를 본 측면은 있다. 하지만 그게 핵심은 아니다. 근본은 민심이 정의당에서 등을 돌린 데 원인이 있다.


예전에는 진보적 유권자 중 많은 이가 “지역구는 민주당 후보를 찍었지만 비례는 정의당에 투표했다”고 했다. 거기에는 비록 당세는 미약할지언정 진보적 의제를 정치권에 투영하기 위해 분투하는 정의당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정의당은 비정규직 노동자, 갑질 피해자, 청소 노동자 등 이 시대 약자들이 기댈 언덕이 되어주었고, 기성 정당이 외면하는 서민 목소리를 공론장으로 끄집어냈다. 덕분에 지금보다 양당 정치가 견고했던 시절에도 10% 가까운 지지율을 올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때처럼 정의당에 애정을 갖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심상정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양당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방을 펼치는 모습을 두고 “역대급 비호감의 부끄러운 선거”라고 평했지만, 정작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정당은 정의당이었다. 사소한 말실수에는 시시비비 따지고 들면서 정작 말해야 할 순간에는 뒤로 물러나는 ‘밉상’ 정당, 이게 오늘날 사람들 눈에 투영된 자기들 모습이라는 걸 정의당만 모른다.


필자가 보기에 언제부턴가 정의당은 불편한 정당이 되었다. 정체성 정치, 소수자 정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민생을 외면했고, 누군가 이런 지적을 하면 “소수자 권익 증진에 반대하는 것이냐”며 혐오주의자 딱지를 붙였다. ‘프로 불편쟁이’들이 토해내는 불편함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불편함으로 다가갔다. 추상같은 잣대로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는 정의당의 정치는, 거듭될수록 보편적 시민들의 정서에서 멀어져갔다.


2015년 가을, 정의당은 ‘노동의 희망, 시민의 꿈’이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노동 존중과 시민권 확대를 천명했다. 거의 7년이 흐른 지금, 정의당에서는 노동자도 서민도 보이지 않는다. 사회를 향한 분노와 불편함만 가득 담겨있을 뿐이다. 그렇게 이들이 외면한 서민들의 삶은 각자도생 처지에 놓였고, 역설적으로 그 빈틈은 보수 정당에 잠식당하고 있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은 과거 ‘6411번 버스 연설’로 유명한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자문했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해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 고압선 철탑에 올라간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처럼 분명 이름이 있지만 제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들이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냐”고,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고. 이 물음은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2022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