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 200309] [현장] 40년간 이어진 80년 광부의 삶, ‘어른이’가 사북을 알아야 할 이유
작성자
이동수
작성일
2020-04-06 11:20
조회
2897
https://bit.ly/2Rfb1Pm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 한 탄광 광부들이 노조 지부 사무실로 향했다. 이들은 임금 40% 인상과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했다. 노조 지부장이 회사와 임금 20% 인상에 합의한 일이 발단이었다. 당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8.7%였다. 앞서 상급단체인 전국광산노동조합(광산노조)도 임금인상 요구안을 42.75%로 정했다.
광부들은 탄광지역 일대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 300여 명이 투입됐고, 광부와 주민들은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다쳤다. 노사정 대표들이 협상에 나서 합의를 이뤄냈지만 이후 광부와 주민 200여 명이 연행됐다. 이 중 31명이 기소됐다.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탄광 ㈜동원탄좌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북 사건이다.

▲지난해 8월 21일 강원 정선 사북읍 뿌리관에서 사북민주항쟁 특별위원회 발족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는 사북 사건이 발생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자신이 쓴 책 <어른이 정치사>를 통해 사북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대표는 사북 사건을 2030세대가 알아야 할 한국 주요 정치사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사북사건을 통해 우리가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광부들이 처한 환경은 열악했다. 동원탄좌 사택 칸막이벽은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졌고 천장은 얇은 스티로폼으로 돼 있었다. 사택은 추위를 막지 못했다. 방음도 되지 않았다. 휴일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기를 끊었다.
임금도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동원탄좌는 임금 인상 전 3개월 동안 임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직전 3개월 간 임금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률을 정했기 때문에 인상폭을 낮추려는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동원탄좌는 광부들이 캔 석탄량을 실제보다 적게 계산하거나 석탄 등급을 낮게 분류해 임금을 낮췄다.
당시 탄광은 온갖 노동문제가 얽혀 있는 곳이었다. 낮은 임금, 잦은 산업재해, 원ㆍ하청 간 격차문제, 위험의 외주화. 사북 사건 40주년인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1980년 광부의 삶이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사북 사건 이후의 사회 흐름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구조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북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북민주항쟁동지회는 지난해 8월 사북항쟁특위를 발족해 정부의 공식 사과와 당사자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노동영상제에서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사북 사건 40주년. 이 대표가 사북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사진제공=이동수 대표)
Q. 사북 사건을 어른들이 알아야 할 현대사 중 하나로 꼽았다. 이유는.
A. 사북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북사건을 통해 우리가 소위 투명인간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돌아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를 묻고 싶었다.
광부는 그 인식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직업이다.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에 합당한 처우를 했나. 결코 아니다. 1970~80년대 석탄은 우리나라가 생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특히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경기악화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저탄가정책을 고수하면서 광부들은 형편없는 조건 속에서 일해야 했다. 탄광업체들은 보갱, 환기, 배수 등의 시설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덕대라고 하는 하청도 만연했다. 지형적 조건도 결부되면서 우리나라 광산업은 기계화ㆍ대형화보다는 노동력을 갈아 넣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매년 200여 명의 광부들이 탄광사고로 죽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Q. 당시 탄광에서 드러난 사회적 모순이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남아 있는데.
A. 직업만 바뀌었을 뿐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특히 이것이 비용과 직결될 때에는 더 그렇다. 꼭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처우를 위한 비용 부담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예컨대 환경미화원들의 심야노동이 그렇다. 그들이 심야에 작업함으로써 야기되는 각종 안전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낮에 작업을 하려 하면 '냄새난다'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셈이다.
Q. 사북 사건을 소개하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A. 사북사건 이후의 전개를 눈여겨봐야 한다. 석탄산업은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고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본이나 독일은 이를 내다보고 점진적으로 폐광 사업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1989년부터 순식간에 진행해버렸다.
1989년 355개였던 전국의 탄광은 불과 5년 만에 52개로 줄어들었다. 3만명이 넘는 광부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산업의 변화를 예측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건 정치권의 의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닥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한다. 무인자동차ㆍ드론이 어떤 세상을 열게 될지 우리 정치권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나.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Q. 당시 노동자들을 바라보던 시각과 오늘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노동을 향한 시선이 여전히 부정적인 이유는.
A.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이다. 다만 약자들의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뿐이다.
문제는 노동조합이 자기네 이익을 위해 더 약자인,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할 때 생긴다. 정부가 석탄합리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덕대'라고 하는 하청 탄광들이 줄줄이 문 닫았을 때, 정작 대형탄광의 노동조합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부 지원금이 자기들에게 더 집중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정규직 노동조합이 조합원으로 비정규직들을 배제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모순을 깨지 않으면 노동운동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Q. 사북 사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A. 올해로 사북사건이 4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냉담하다. 앞서 언급한 환경미화원, 청소노동자, 경비원, 택배기사 등이 그렇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그들이 매순간 위험에 노출돼야 한다면 결코 우리는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울타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그들의 안전과 처우개선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대영 기자 [email protected]
[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 한 탄광 광부들이 노조 지부 사무실로 향했다. 이들은 임금 40% 인상과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했다. 노조 지부장이 회사와 임금 20% 인상에 합의한 일이 발단이었다. 당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8.7%였다. 앞서 상급단체인 전국광산노동조합(광산노조)도 임금인상 요구안을 42.75%로 정했다.
광부들은 탄광지역 일대를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 300여 명이 투입됐고, 광부와 주민들은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다쳤다. 노사정 대표들이 협상에 나서 합의를 이뤄냈지만 이후 광부와 주민 200여 명이 연행됐다. 이 중 31명이 기소됐다. 1980년 4월 국내 최대 민영탄광 ㈜동원탄좌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북 사건이다.

▲지난해 8월 21일 강원 정선 사북읍 뿌리관에서 사북민주항쟁 특별위원회 발족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올해는 사북 사건이 발생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자신이 쓴 책 <어른이 정치사>를 통해 사북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 대표는 사북 사건을 2030세대가 알아야 할 한국 주요 정치사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사북사건을 통해 우리가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를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광부들이 처한 환경은 열악했다. 동원탄좌 사택 칸막이벽은 나무 합판으로 만들어졌고 천장은 얇은 스티로폼으로 돼 있었다. 사택은 추위를 막지 못했다. 방음도 되지 않았다. 휴일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기를 끊었다.
임금도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동원탄좌는 임금 인상 전 3개월 동안 임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직전 3개월 간 임금을 기준으로 임금 인상률을 정했기 때문에 인상폭을 낮추려는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동원탄좌는 광부들이 캔 석탄량을 실제보다 적게 계산하거나 석탄 등급을 낮게 분류해 임금을 낮췄다.
당시 탄광은 온갖 노동문제가 얽혀 있는 곳이었다. 낮은 임금, 잦은 산업재해, 원ㆍ하청 간 격차문제, 위험의 외주화. 사북 사건 40주년인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들이다. 1980년 광부의 삶이 4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는 사북 사건 이후의 사회 흐름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구조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북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북민주항쟁동지회는 지난해 8월 사북항쟁특위를 발족해 정부의 공식 사과와 당사자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노동영상제에서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이라는 작품으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사북 사건 40주년. 이 대표가 사북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물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사진제공=이동수 대표)
Q. 사북 사건을 어른들이 알아야 할 현대사 중 하나로 꼽았다. 이유는.
A. 사북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사북사건을 통해 우리가 소위 투명인간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돌아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를 묻고 싶었다.
광부는 그 인식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직업이다. 산업역군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에 합당한 처우를 했나. 결코 아니다. 1970~80년대 석탄은 우리나라가 생산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에너지원이었다. 특히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른 경기악화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가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해 저탄가정책을 고수하면서 광부들은 형편없는 조건 속에서 일해야 했다. 탄광업체들은 보갱, 환기, 배수 등의 시설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았다. 덕대라고 하는 하청도 만연했다. 지형적 조건도 결부되면서 우리나라 광산업은 기계화ㆍ대형화보다는 노동력을 갈아 넣는 식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매년 200여 명의 광부들이 탄광사고로 죽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Q. 당시 탄광에서 드러난 사회적 모순이 지금도 개선되지 않고 남아 있는데.
A. 직업만 바뀌었을 뿐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희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특히 이것이 비용과 직결될 때에는 더 그렇다. 꼭 기업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노동자들의 안전이나 처우를 위한 비용 부담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예컨대 환경미화원들의 심야노동이 그렇다. 그들이 심야에 작업함으로써 야기되는 각종 안전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낮에 작업을 하려 하면 '냄새난다'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등의 민원이 쏟아진다고 한다. 결국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셈이다.
Q. 사북 사건을 소개하면서 인상 깊었던 대목은.
A. 사북사건 이후의 전개를 눈여겨봐야 한다. 석탄산업은 저유가 시대가 도래하고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본이나 독일은 이를 내다보고 점진적으로 폐광 사업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1989년부터 순식간에 진행해버렸다.
1989년 355개였던 전국의 탄광은 불과 5년 만에 52개로 줄어들었다. 3만명이 넘는 광부들이 길바닥에 나앉았다. 산업의 변화를 예측하고 여기에 대비하는 건 정치권의 의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닥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한다. 무인자동차ㆍ드론이 어떤 세상을 열게 될지 우리 정치권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나.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된다.
Q. 당시 노동자들을 바라보던 시각과 오늘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노동을 향한 시선이 여전히 부정적인 이유는.
A.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이익집단이다. 다만 약자들의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우리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뿐이다.
문제는 노동조합이 자기네 이익을 위해 더 약자인,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할 때 생긴다. 정부가 석탄합리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덕대'라고 하는 하청 탄광들이 줄줄이 문 닫았을 때, 정작 대형탄광의 노동조합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부 지원금이 자기들에게 더 집중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정규직 노동조합이 조합원으로 비정규직들을 배제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모순을 깨지 않으면 노동운동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Q. 사북 사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A. 올해로 사북사건이 4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냉담하다. 앞서 언급한 환경미화원, 청소노동자, 경비원, 택배기사 등이 그렇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그들이 매순간 위험에 노출돼야 한다면 결코 우리는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울타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그들의 안전과 처우개선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대영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