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002] [공정을 말하다] "0.1점차로 삶이 바뀌는데, 부모찬스 수긍할 수 있겠나"
작성자
이동수
작성일
2020-10-02 21:05
조회
86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2714370004820
노력만큼 보상받는 게 공정, 약자위한 제도 악용 많아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 기성세대 잣대로 매도 말길
위법은 아니라는 태도 더 얄미워…신뢰 훼손에 책임을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공정이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라며 "그 노력이 꼭 시험성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경험도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런 메일을 보낸 청년들은 지역균형선발 같은 사회적 약자 배려제도 역시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선발하는 건 불공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 양립해서 가야한다. 다만 약자를 위한 제도가 종종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과거 재벌 자녀가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한부모 가정)으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말이다. 제도 설계를 보다 꼼꼼히 해야 한다.”
-근래 들어 왜 우리사회가 유독 공정성을 강조한다고 보나.
“저성장, 고실업과 직결된 문제다. 고도성장기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내 눈앞에서 다소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다해도 그게 내 인생을 크게 망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0.1점 차이로도 삶이 바뀐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높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승자가 독식하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그러다보니 경쟁의 연령대는 자꾸 낮아진다. 이제는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부터 경쟁이다. ”
-청년들의 공정에 대한 시각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두 개의 공정이 부딪힌 사건이기도 했다.
“누군 몇 년씩 공부해 겨우 공기업에 들어가는데, 비정규직으로 일 좀 했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말이 되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않나. 우리 사회는 한 번의 시험으로 정규직이 되면 정년과 안정적 임금이 보장되고, 그렇지 못하면 평생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 시험 한 번에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이와 별개로 인국공 사태는 '비정규직 제로'라는 수치 목표를 정해놓은 정부가 구체적 고민 없이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촉발된 측면도 크다.”
-의사파업은 어떤가. 의사들은 의학전문대학원, 공공의대 같은 경로로 의사가 되는 게 불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사가 공부를 잘해야 하는 직업은 맞지만 학창시절 전교 1등만 했다고, 수능 잘 봤다고 훌륭한 의사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만 공공의대 논란의 핵심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시도추천위원회가 학생을 선발·추천한다’는 부분 때문이다. 로스쿨, 의전원 등 지금껏 다양성을 이유로 만든 제도가 있는 집 자식을 위한 제도로 악용되는 과정을 숱하게 봐온 국민들로서는 이를 음서제도의 확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불신을 해소하지 않으면 공공의대는 출범하기 어렵고, 출범해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에게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은 타 국시와 형평성을 고려할 때 불공정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시 거부는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일이다. 후회스럽더라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의사가 될 사람들이라 기회를 한 번 더 주자는 것이야말로 특혜이고 불공정이다. 수능은 5분만 지각해도 1년 뒤에 다시 봐야 한다.”
이 대표는 여권 인사 자녀를 둘러싼 특혜 논란에 대해 "행위 자체보다 위법은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가 더 얄밉다."고 말했다. 왕나경 인턴기자
-이 대표가 올해 낸 책에서 '실력주의로 최정상에 선 이들이 청년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면서 자녀는 명문대에 보내려 하는 행태는 이중적'이라고 비판한 대목을 봤다.
“조국 사태를 비판했던 젊은이들을 ‘청년 일베’라고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야말로 위선'이라는 말을 돌려주고 싶다. 자기 자녀들은 미국유학 보내놓고 국민에게는 혁신학교 가라는 게 정의로운가. 청년들이 공정에 목을 매는 것은 이 사회를 불신하기 때문도 있다. 우리 사회는 신뢰 훼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 박원순 오거돈 시장 문제로 천문학적 선거비용 소요되게 됐는데 당도, 개인도 책임지지 않는다.”
-청년들의 공정과 86세대 같은 기성세대의 공정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요한다. 사회적 연대, 평화통일 같은 것인데 청년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경쟁에 익숙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매도한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평화통일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라면 누가 수용하겠나. 자신들 때처럼 하나로 뭉쳐서 싸우질 않는다고들 하는데 지금 청년들은 이미 민주화, 다원화된 사회에서 태어난 세대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내릴 뿐이다. 그런데도 86세대들은 여전히 80년대 컴퓨터로 최신 게임을 만들려 하는 것 같다. 금태섭·김해영 의원에게 가해진 윽박이나 비판, 댓글테러가 과연 맞는 모습인가. 당내 비판을 자유롭게 수용해야 하는데 여전히 집단주의가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기념사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얼마전 청년의 날 행사는 어떻게 봤나.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세대의 아픔을 공감한다면서 공정을 37번이나 강조했는데.
"글쎄, 대통령이 공정을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주변 사람들의 공정부터 정리하고 말씀하셔야 하는거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지난 정부의 유체이탈 화법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노력만큼 보상받는 게 공정, 약자위한 제도 악용 많아
벼랑 끝에 내몰린 청년들, 기성세대 잣대로 매도 말길
위법은 아니라는 태도 더 얄미워…신뢰 훼손에 책임을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공정이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것"이라며 "그 노력이 꼭 시험성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경험도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런 메일을 보낸 청년들은 지역균형선발 같은 사회적 약자 배려제도 역시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물론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선발하는 건 불공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 노력의 성과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 양립해서 가야한다. 다만 약자를 위한 제도가 종종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과거 재벌 자녀가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한부모 가정)으로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말이다. 제도 설계를 보다 꼼꼼히 해야 한다.”
-근래 들어 왜 우리사회가 유독 공정성을 강조한다고 보나.
“저성장, 고실업과 직결된 문제다. 고도성장기에는 고등학교만 나와도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내 눈앞에서 다소 불공정한 일이 벌어진다해도 그게 내 인생을 크게 망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0.1점 차이로도 삶이 바뀐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높은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승자가 독식하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그러다보니 경쟁의 연령대는 자꾸 낮아진다. 이제는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는 것부터 경쟁이다. ”
-청년들의 공정에 대한 시각을 가장 잘 보여준 사례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두 개의 공정이 부딪힌 사건이기도 했다.
“누군 몇 년씩 공부해 겨우 공기업에 들어가는데, 비정규직으로 일 좀 했다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말이 되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라고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않나. 우리 사회는 한 번의 시험으로 정규직이 되면 정년과 안정적 임금이 보장되고, 그렇지 못하면 평생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한다. 시험 한 번에 인생이 결정되는 사회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 이와 별개로 인국공 사태는 '비정규직 제로'라는 수치 목표를 정해놓은 정부가 구체적 고민 없이 무리하게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촉발된 측면도 크다.”
-의사파업은 어떤가. 의사들은 의학전문대학원, 공공의대 같은 경로로 의사가 되는 게 불공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의사가 공부를 잘해야 하는 직업은 맞지만 학창시절 전교 1등만 했다고, 수능 잘 봤다고 훌륭한 의사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만 공공의대 논란의 핵심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시도추천위원회가 학생을 선발·추천한다’는 부분 때문이다. 로스쿨, 의전원 등 지금껏 다양성을 이유로 만든 제도가 있는 집 자식을 위한 제도로 악용되는 과정을 숱하게 봐온 국민들로서는 이를 음서제도의 확대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불신을 해소하지 않으면 공공의대는 출범하기 어렵고, 출범해도 그들만의 리그라는 오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에게 재응시 기회를 주는 것은 타 국시와 형평성을 고려할 때 불공정하다는 의견도 있다.
“국시 거부는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일이다. 후회스럽더라도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의사가 될 사람들이라 기회를 한 번 더 주자는 것이야말로 특혜이고 불공정이다. 수능은 5분만 지각해도 1년 뒤에 다시 봐야 한다.”
이 대표는 여권 인사 자녀를 둘러싼 특혜 논란에 대해 "행위 자체보다 위법은 아니지 않느냐는 태도가 더 얄밉다."고 말했다. 왕나경 인턴기자
-이 대표가 올해 낸 책에서 '실력주의로 최정상에 선 이들이 청년에게는 양보와 배려를 강요하면서 자녀는 명문대에 보내려 하는 행태는 이중적'이라고 비판한 대목을 봤다.
“조국 사태를 비판했던 젊은이들을 ‘청년 일베’라고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내로남불이야말로 위선'이라는 말을 돌려주고 싶다. 자기 자녀들은 미국유학 보내놓고 국민에게는 혁신학교 가라는 게 정의로운가. 청년들이 공정에 목을 매는 것은 이 사회를 불신하기 때문도 있다. 우리 사회는 신뢰 훼손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다. 박원순 오거돈 시장 문제로 천문학적 선거비용 소요되게 됐는데 당도, 개인도 책임지지 않는다.”
-청년들의 공정과 86세대 같은 기성세대의 공정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요한다. 사회적 연대, 평화통일 같은 것인데 청년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경쟁에 익숙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매도한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평화통일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하라면 누가 수용하겠나. 자신들 때처럼 하나로 뭉쳐서 싸우질 않는다고들 하는데 지금 청년들은 이미 민주화, 다원화된 사회에서 태어난 세대라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내릴 뿐이다. 그런데도 86세대들은 여전히 80년대 컴퓨터로 최신 게임을 만들려 하는 것 같다. 금태섭·김해영 의원에게 가해진 윽박이나 비판, 댓글테러가 과연 맞는 모습인가. 당내 비판을 자유롭게 수용해야 하는데 여전히 집단주의가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기념사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얼마전 청년의 날 행사는 어떻게 봤나.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세대의 아픔을 공감한다면서 공정을 37번이나 강조했는데.
"글쎄, 대통령이 공정을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주변 사람들의 공정부터 정리하고 말씀하셔야 하는거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지난 정부의 유체이탈 화법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인터뷰 순서
1.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2.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3. 주진형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전 한화증권 사장
4. 장혜영 정의당 의원
5.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7. 김범수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