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노동법률에 이동수 대표의 기고글이 실렸습니다.(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동수 스멜..)
청년과 노조가 멀어지게 된 원인을 나름 분석해 보았습니다.

본문 공유합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http://www.worklaw.co.kr/view/view.asp?accessSite=Naver&accessMethod=Search&accessMenu=News&in_cate=102&in_cate2=0&gopage=1&bi_pidx=28119

<방탄소년단 시대에 조용필 노래로 청년 잡겠다는 노조들>

나의 학창시절 꿈은 기자였다. 글 쓰고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1학년 겨울방학에는 언론사의 인턴기자를 했다.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즐거웠다.

2학년에 들어간 두 번째 언론사에서는 6개월을 보냈다. 주 5~6일 가량을 출근해 늦은 시간 퇴근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한 달 간의 사내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인 취재 보조 업무가 시작되자 종종 택시를 타야하는 일이 생겼다. “교통비라도 좀 달라”는 인턴기자들의 볼멘소리에 회사에서는 논의해보겠다는 답을 줬다. 그리고는 다음 달부터 10만원씩을 입금했다. “인턴은 기자가 아니다”라며 기사의 바이라인에도 철저히 ‘이동수 인턴기자’가 아닌 ‘이동수 인턴’으로 기재하던 그 회사에는 엄연히 노동조합이 존재했다. 유급의 노조전임자도 있었다. 그러나 애초 직원들과 신분이 다른 인턴들의 월급에 노조가 관심을 가질 리 만무했다. 인턴들에게 50~60만원만 줘도 많이 챙겨준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이것은 내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우리 또래가 보편적으로 겪었던 일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떤 디자이너는 수습에게 10만원, 인턴에게 30만원의 월급을 줘 지탄을 받았다. 채소가게로 성공 신화를 이룬 한 기업인은 자신의 저서에서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쳐주는데 월급을 받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고 써 논란을 빚기도 했다. 법을 만드는 국회도 다르지 않다. 인턴들의 급여가 2008년부터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결되다가 최근에야 소폭 상승했다. 비슷한 시기 국회의원 세비는 37% 인상됐다.

노동조합은 청년들에게 해태나 삼족오처럼 상상 속의 존재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인턴, 비정규직, 계약직이 부지기수인 청년들에게는 노동조합 가입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던 미생들은 스스로 청년들의 노조를 조직하고 열정페이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는 2016년이 돼서야 인턴 열정페이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일경험 수련생에 대한 법적 지위 판단과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시행했다.

저조한 노조조직률, 새 세대 수혈 안 된다는 의미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년이 지나지 않아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이 탄생했다. 헌법보다 노동조합이 먼저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노동조합이 있었지만 열정페이 문제는 최근에야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노동조합이 아닌 청년들 스스로가 낸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노동조합이 변하는 시대에 따라오지 못 했거나,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어쩌면 노동조합, 더 나아가 노동운동의 세대교체 실패와 밀접할 지도 모른다.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큼 노동운동이 나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에 힘입은 노동운동은 파죽지세로 세를 불려 나갔다. 1989년에는 노조조직률이 19.8%에 달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반 토막이 나버렸다. 지난 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노동조합 조직대상 근로자 1,917만2,000명 중 196만6,000명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것이다. 10.3%다.

노조조직률은 인구수와 비슷해서 윗세대는 퇴장하는데 새로운 세대가 진입하지 않으면 소멸되고 만다. 반 토막 난 노조조직률은 결국 새 세대가 수혈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노동운동을 좌우하던 세대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같은 세대가, 같은 감성을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 오늘 날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방탄소년단이 활동하는 시대에 조용필 노래를 틀어놓고 청년들 마음 사로잡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이것은 애당초 청년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사실 노조는 구조적으로 청년과 거리가 멀다. 청년 이슈의 절반 이상은 일자리 문제다. 우리나라 청년 정책의 상당수는 기취업자, 특히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청년에게는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훨씬 더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노조의 역할은 일자리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조합원들의 울타리를 높이는 데 있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과 일자리 처우 개선을 원하는 노조의 이해관계는 좀처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노조, 청년 포용하려면 일상적 문제에 귀 기울여야

물론 조합원 우선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칠 경우 노조는 약자를 배제하는 이익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 청년들이 노조를 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결사체보다 ’50대 아저씨들의 정치싸움의 장’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노조가 시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것은 메시지에서도 나온다. 다양화되고 세분화된 요즘에도 여전히 노조는 커다란 이슈만을 주로 다루고 있다. 최저임금 문제나 노동시간 단축 외에는 좀처럼 노조에서 내는 목소리가 청년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노동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사안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IMF 이후 일자리 구조의 다변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비정규직, 계약직, 아르바이트가 넘쳐났고 이름도 생소한 중규직이니, 무기계약직이니 하는 것들도 등장했다. 세상의 일자리와 그에 따른 욕구는 이렇게 다양해졌는데 여전히 노조는 대기업 정규직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돌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담론과 이념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그 시절에는 민주 사회를 이루는 것이 지상최대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일자리의 형태만큼 사람들의 욕구도 다양해졌다. 거대 담론이나 거시적인 쟁점만으로는 우리가 처한 일상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몇 해 전 한 피자 배달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고객이 주문한 순간부터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하겠다는 사측의 무리한 마케팅 전략이 일으킨 사단이었다.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기성 노동조합이 아니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청년유니온이었다. 기존 노동조합이 다루기엔 작다고 여겨지는 이런 사안들이 실제로 청년들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노동조합이 청년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작지만 중요한 사안들에 귀 기울이고 힘써야 한다.

“노조가 일상적 문제 해결할 수 있어야 청년도 손 내밀어”

지금까지 노조는 청년을 포용할 생각이 없었고 청년들 역시 노조에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는 OECD 최저 수준의 노조조직률로 나타났다. 이 현실을 타개하지 않으면 현재 노동운동의 주체세력이 퇴장하고 난 뒤 노조의 힘은 급격히 쇠약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노총이 청년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의 노동조합은 찾아가는 공론장이 돼야 한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교육과 홍보를 통해 청년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 기존의 큰 이슈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작은 이슈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일상 곳곳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노조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청년들도 먼저 노조에 손을 내밀 것이다.